2018. 12. 27. 목. 말금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서울 종로2가에서 보신각종을 33번 치는 행사.
원래 '제야(除夜)의 종'은 제석(除夕) 또는 대회일(大晦日)에 중생들의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의미로 각 사찰에서 108번의 타종을 하던 불교식 행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제야 또는 제석은 '섣달 그믐날 밤(음력 12월 30일경)' 어둠을 걷어내는 것, 즉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신각종 타종은 조선 초 태조 1396년부터 도성의 4대문과 4소문을 열고 닫기 위해 하루 두 번 종을 쳐 온데서 유래한다. 당시 보신각은 오늘날의 인사동 입구에 '종각'이라는 명칭으로 세워져 도성의 4대문과 4소문을 열고 닫는 새벽 4시경(오경)과 밤 10시경(이경) 하루 두 차례 종을 쳐 주민의 통행금지 해제와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경에는 28번의 종을 치고 인정(人定, 또는 인경)이라 하였는데, 이는 우주의 일월성신 28별자리(이십팔수)에 밤 사이의 안녕을 기원한 것이다. 그리고 오경에는 33번의 종을 치고 파루(罷漏)라고 하였는데, 이는 불교에서의 수호신인 제석천이 이끄는 하늘의 삼십삼천(天)에게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무병장수, 평안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1895년(고종 32년) '종각'에서 '보신각'이라는 명칭으로 바뀌되면서 정오와 자정에 타종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1908년 4월부터는 포(砲)를 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한편, 태조 때 주조된 종루는 1413년 종로 4거리로 옮겨졌고, 1468년 세조 때 새로 주조되었다. 새로 주조된 원래의 보신각종(보물 제2호)은 임진왜란과 6ㆍ25전쟁 때 화재로 인해 원래의 모습과 음향이 많이 손상되어 1985년까지만 제야의 종으로 사용된 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지금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은 국민의 성금에 의하여 새로 주조된 종이다. 이 종은 1985년 8월 14일 보신각에 걸렸고, 8월 15일 광복절에 처음 타종되었다.
우리나라에 '제야의 종'이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일제강점기를 겪고 있던 1929년, 일본 경성방송국이 특별기획으로 정초에 '제야의 종소리'를 생방송으로 내보낸 것이 시초였다. 당시에 사용된 종은 일본인 사찰 동본원사에서 빌려와 타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매년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보신각종을 33번 치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1953년부터 시작하여 새해맞이 행사로 정착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야의 종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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