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6. 화. 말금
'중국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마천(司馬遷)의 초상화에는 수염이 없다. 흉노를 정벌하러 갔다가 포로가 된 이릉(李陵) 장군을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고 변호하다가 고환이 제거되는 궁형을 당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두 아들은 아버지로 인한 화를 피하기 위해 은거하는데, 큰 아들 사마림(司馬臨)은 성(姓)을 사마의 마(馬)에 점 두 획을 더해 풍(馮)으로 고치고, 작은 아들 사마관(司馬觀)은 사마의 사(司)에 한 획을 더해 동(同)으로 고쳤다. 그래서 지금도 사마, 풍, 동씨는 같은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서로 결혼하지도 않는다.
명대 주원장(朱元璋)의 넷째 아들 주체(朱棣)가 어린 조카를 내쫓고 황제에 오르자, 방효유(方孝孺)는 끝까지 저항하다 본가와 외가를 합친 구족에, 친구, 제자까지 포함한 십족,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다.
방효유의 후손들은 성을 시(施)로 바꾸었는데 시(施)자를 풀면 방인야(方人也, 방씨 사람이다)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성이 바뀌는 일은 흔치 않다. 우리말에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을 강조할 때 "성을 간다"는 말이 있듯이, 성은 조상대대로 전수된 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불변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성 성(姓, xìng)은 의미 요소인 여(女)와 소리 요소인 생(生)의 결합으로 보기도 하고,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는 회의자로 보기도 하는데 어떻게 해석하든 모두 원시 모계사회의 흔적이 느껴진다. 불분명한 아버지보다 난 것이 확실한 어머니를 중심으로 씨족사회가 형성된 것은 어쩜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원시 모계사회에서 성은 오직 여성의 권리에 귀속되었던 셈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에는 모두 '여(女)'가 들어 있다. 신농(神農)의 어머니는 강수(姜水)에, 황제(黄帝)의 어머니는 희수(姬水)에, 순(舜)임금의 어머니는 요허(姚虛)에 살아서 강(姜), 희(姬), 요(姚)씨 성이 생겨났다고 한다.
지금은 언어의 합류현상으로 '씨(氏)'와 같은 개념으로 함께 쓰이지만, 과거에는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었다. 성은 개인이나 가족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종족 전체를 일컫는 말이고, 씨(氏)는 종족이 분가하여 성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종파를 이르는 말이었다. 예를 들면 강(姜)이라는 종족은 훗날 신(申), 여(呂), 허(許), 기(紀), 최(崔), 마(馬)씨 등으로 갈라졌다.
성은 종족이므로 변하지 않지만, 씨는 조상의 별호(別號), 시호(諡號), 관직, 나라이름, 거주지 등에서 취해 분화되었다. 엄격한 종법제도 하에서는 씨가 같고 성이 다르면 결혼을 할 수 있으나, 다른 씨라도 해도 성이 같으면 결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역사와 문화가 담긴 성은 그 자체로 중요한 문화자료이며, 현재 중국에는 약 4700개의 성(姓)이 있고, 왕(王)씨와 이(李)씨만도 각각 9천만 명이 넘는다.
출처: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53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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