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4. 토. 말금
새벽 3시에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4시출발을 3시에 하자고 해노코
태우러 갔다.
아침은 산청휴게소에서 라면으로 해결하고
땅벌 상할머니 산소에 도착하니 6시다.
군에서 예취기를 해봤다기에 아들에게
맡겨보니 불안불안하다.
요령이 부족하나 한참을 맡겨둬보다가
교대해서 내가 마무리 하고 술잔을 올린다.
올해도 아들 합격을 보살펴 달라는 소원을 빌고
할머니 할아버지 묘소로 향한다,
묘소에는 어제 고향에 와서 하룻밤을 잔 봉길 당숙과 큰 당숙모, 6촌 동생들이 도착해 있다.
조금 지나자 종길 당숙과 억수, 경수 동생이 도착한다.
모두 함께 묘소에 올라 벌초를 마치고
다음은 3팀으로 나누어 벌초를 자져하기로 하고
봉길당숙, 나, 아들, 억수동생 팀은 동네 뒤 산 중턱위에 잇는 쎄남배기 고조모 할머니 묘소로
가는데 이곳은 오랫만에 가다보니 당숙아니면 찾지 못할것이다.
가는길에 내 아주 어릴때 할머니가 바위밑 샘물곳에서 매일새벽 치성을 드린곳도
지나게 되었고 할머니 따라 몇번인지 간것은 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이전인데도 기억이 난다.
자식들 잘되라고 그렇게 치성을 드렸는데 ....
어느해 겨울 새벽에 눈을 헤치고 치성을 드리고 오는데 호랑이가 눈에 불을 켜고
동네 뒤까지 따라오면서 길을 비추어 주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아름들이 소나무들도 둘러싸인 묘소는 명당이었을 텐데.
이번에는 물방우골 증조부 묘소로 벌초를 가는데 완전히 밀림을 헤치고
나가는 등반이나 다름이 없다.
물방우골 증조부 묘소는 돌을 높이 쌓아 올려 급 경사지에 묘소를 만든곳으로
시신을 이곳까지 모시고 와서 돌을 하나 하나 쌓아 이렇게 너른 묘터를 만들고
장례를 치렀다는게 경이 롭다.
꽃 밭동은 다른 팀이 갔기에 오늘은 못갔다.
진성 고조부(1840년5월14일생,1893년3월29일 졸, 묘소 꽃밭동), 고조모(쎄남배기)
석용 증조부(1871년3월20일 생, 1921년3월29일 졸, 묘소망봉 물방우골), 증조모(당흥 바람재)
교태 조부 (1900년9월18일 생, 1962년2월4일 졸, 묘소 용류담 위), 조모(조부와 쌍조)에 모셔져 있다.
큰 당숙부 묘소 벌초를 끝으로 마무리하고 나니 11시다.
당숙꼐 인사를 드리고 아들과 바삐 돌아 온다.
아들 먹으라고 화개서 흑돼지 2근을 사고 점심은 산청 휴게소에서 떼우고
차 막힐까 서둘러 차를 몰았다.
차막히는 것도 그렇지만 기장 천년지기 할아버지 묘소도
오늘 벌초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을 집에 내려 노코 천년지기를 태워 기장 벌초를 마치고 나니
5시 반이다.
새벽2시에 일어나 움직여 이시간에 마쳐 진것이다.
힘들었지만 해야 될 일이고 뿌듯함이 피곤함을 사라지게 하였다.
아들도 이어갈려는지 ????
아들아 !!!
오늘도 수고 많았다.
고맙다.
▲ 당흥 바람대 증조모 묘소
▲ 용류담 함양군수 선정비 위 조부,조모님 묘소
▲ 쎄남배기 고조모님 묘소
▲ 물방우골 증조부님 묘소
▲ 작은 할아버님 내외분, 큰 당숙 묘소
▲ 천년지기 조부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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