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3. 수. 맑음
18살이면 결혼하고 군대도 보내면서, 선거권은 왜 안주나요?
“선거법 개정” 활동하는 10대들
정치적 판단 성숙하지 않았다고
만 18살에 선거권 안 주는 현실
“성인들은 판단능력이 좋아서
박근혜 전 대통령 뽑았나요?”
청소년에 더 높은 정치적 잣대
“참정권 능력시험이라도 있나요”
“청소년이 가장 고민한 입시정책
“같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을 들었지만 우린 같이 (대통령선거) 투표도 못 했잖아요.”
김가을길(16·한국조형예술고1)양이 얘기하자, 김윤송(15)양이 “대선 토론회 등을 보고 있으면 나도 짜증났다”고 호응했다. “그걸 봐도 투표도 못 하기” 때문이었다. 광장이든 온라인이든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민주주의를 외친 청소년들은 실제 선거에선 ‘시민 바깥’으로 떠밀려났다. 다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김윤송)가 됐고, “교복을 입고 있으면 후보자가 명함도 주지 않는 존재”(김가을길)가 됐다.
지난 12월26일 국회에서 만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소속 김윤송, 이 연대의 전국 상임대표 이은선(17·울산 지역 고등학교 3), 부산제정연대 상임대표 김가을길양은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위한 법 개정 촉구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대표와 김 대표는 기자회견·집회 등을 위해 울산·부산과 서울을 수시로 오간다. 이들은 “피곤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윤송양은 탄핵 촛불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고, 김 대표는 촛불집회 당시 참가자들의 발언 중 ‘혐오발언’이 있는지 확인해 주최 쪽에 전달하는 일을 했다. 울산총학생회장연합회 회장인 이 대표는 울산 지역 12개 학교 학생인권 침해 사례를 모아 청와대·국가인권위에 제기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제정연대는 탄핵집회 이후 만 19살 이상 성인만 가능한 선거권·주민발의·주민투표 나이를 낮추는 법 개정과 어린이·청소년인권법 제정을 위해 지난해 9월 청소년·교육단체가 모인 연대체(현재 350여개)다. “청소년은 삶에 영향을 주는 모든 선거(대선, 총선, 지방선거, 교육감 선거)와 피선거권, 주민투표·주민발의·국민투표에서 배제된 현실”을 바꾸려고 한다. 당장 16살까지 확대가 어렵다면 일단 18살까지 낮추는 게 목표다.
한국의 투표 나이는 1948년 만 21살, 1960년 20살, 2005년 19살로 낮아졌지만, 청소년은 정부 수립 이후 한번도 투표하지 못했다. 선거에서 후보·정당의 지지 의견 표명도 할 수 없다. 18살이면 결혼도 하고(민법), 운전면허를 따고(도로교통법), 군에 입대하고(병역법), 8급 이하 공무원도 되지만(공무원임용시험령) 투표만 ‘19살 문턱’을 세워놓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6년 8월 선거권 나이를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냈다. “정치·사회 민주화, 교육수준 향상, 인터넷 등 다양한 대중매체를 이용한 정보 교류가 활발해진 사회환경으로 인해 18살 청소년은 독자적 신념과 정치적 판단에 기초해 선거권을 행사할 능력이 있다”는 의견이었다. 선관위는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선거교실, 정치캠프 등을 꾸준히 운영한다.
현재 20대 국회에선 민주당(윤후덕·이재정·진선미·박주민·윤호중·소병훈·표창원), 국민의당(이용호·김관영), 바른정당(박인숙), 정의당(윤소하) 등 11명의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11건이 제출됐다. 모두 선거권 나이를 18살로 낮추는 개정안이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투표 나이 인하가 논의됐지만 자유한국당 반대로 합의하지 못했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개특위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청소년은 참정권을 누리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투표 나이 인하 반대의 주요 주장이 바로 ‘청소년의 정치 판단 능력 부족과 정치적 미성숙’이다. 김 대표는 “정치 판단 능력으로 선거권을 준다면 ‘참정권 판단 능력시험’이라도 봐야 하느냐”며 “(성인들은) 정치적 판단 능력이 좋아 (국정농단 사태를 벌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뽑은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투표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삶의 근거로 하면 된다. 청소년도 자신의 삶을 근거로 투표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민주주의에서 미성숙은 상대를 무시하고 내 의견만 내세우는 것이다. (투표 나이 인하에) 반대하는 분들의 태도가 청소년 얘기를 듣지 않는 미성숙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도 “선거권도 주지 않아 청소년을 정치적으로 무력화해놓고, 정치에 관심도 없는 미성숙한 아이들이란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적 주장에 쉽게 영향을 받는 성인이 많은데도, 청소년들의 정치 성숙도만 지적하는 것은 그들에게만 더 높은 정치적 자격 요건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청소년이 부모·교사 영향을 받아 투표할 것이란 주장도 김윤송양은 이해할 수 없다. “비청소년(성인)은 ‘요즘 애들이 말도 안 듣고, 말대꾸한다’고 말하면서, 선거권 관련해선 ‘어른 말을 잘 듣고 투표할 것’이라고 한다. 모순된 얘기다. 청소년이 정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선거권은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다.”
‘학교가 정치판이 될 것’이란 주장도 수긍할 수 없다. “학생회장 선거도,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학교 쪽이 말하는 행위도, 학교 예산을 감시하는 것도 모두 정치적이다. 사회는 정치의 연속이며, 학교의 정치화가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게 이들의 얘기다. ‘고3까지 투표하면 수능에 지장을 준다’는 것에 대해서도 “청소년이 투표권을 가지면 (오히려) 입시 제도를 포함한 교육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반박한다.
올해 지방선거를 ‘청소년의 첫 선거’로 만들려던 이들의 바람은 자유한국당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치개혁 사안은 여야 합의 처리가 오랜 관례였다. 김 대표는 “자유한국당은 청소년의 진보 성향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투표 나이를 낮추면 진보에 유리하다는 정치적 손익 계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송양은 “청소년들이 더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투표 나이를 18살로 낮추면 약 60만명의 청소년 유권자가 새로 생긴다.만 15살인 김윤송양은 “2020년 총선까지도 투표 나이를 낮추지 못하면 그때도 난 선거권이 없다”고 했다. “당연한 권리”가 더는 잡을 수 없는 권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그는 얘기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26079.html?_ns=t1#csidxd483945373a13a4adda222fa042da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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